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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와 2박3일

개울가재 2009. 12. 10. 05:01

친정엄마와 2박3일

 

 

조석으로 알맞게 찬바람이 불어와 가을의 초입으로 들어서던 날, 올 새해부터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사회 초년생 아들에게서 온 전화벨이 울렸다. 추석을 보름쯤 앞두고 폼 나게 추석선물을 마련해보리라고 남매가 의기투합한 고민 끝에 내린 제안이란다. 올해로 여든 한 번째 생신을 맞이하신 친정노모를 중심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로 결국은 지혜로운 딸애의 초점에 맞추어져 탤런트 강부자씨가 단역으로 출연하는 연극 티켇 세장을 예매 하였다는 전갈이었다. 평소 강부자씨가 출연하는 드라마와 평생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왕 팬인 친정엄마를 위한 보너스였다. 날짜가 바로 추석이 지난 이틀 후이므로 교통체증이 우리일행을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중년이 되어버린 두 딸을 앞세우고 어쩌면 처음일수도 마지막일지도 모를 엄마와의 테이트에 대한 설렘으로 우리는 출발 전부터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교통을 염려한 나머지 보온병에 커피를 넉넉히 타서 준비한 언니와 마치 외국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여권가방을 어깨에 메고 가디건과 숄까지 챙기고 나오신 엄마의 완전한 준비에 우리 형제는 킥킥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하기야 평생을 충청도에서 태어나 팔십년을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에서 과연 몇 조각이나 도외지 그림을 섞어 드렸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가깝게 모시고 살아오면서 내 필요할 때마다 친정엄마를 청했던 도움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가히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는 노릇이다. 참으로 나는 복도 많지 하는 생각을 한 달에도 몇 번씩 뇌이곤 한다. 언니와의 나이차가 7년이나 있기도 하지만 늦게 얻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오신 세월, 아이들 덕분에 그 빚을 벗어보려고 오늘 마음먹고 나섰다. 운전을 하면서 딸애와 통화하여 근사한 곳에서 노모가 그리고 언니가 즐겁게 드실 수 있을 맛 집을 골라 예약하고 교통시간을 검색하고 바쁜 마음이 꼿꼿하게 흐르는 긴장감 속에서도 즐거운 거리 풍경은 어김없이 엄마에게로 전해졌다.

 

“오, 저 꽃들 좀 봐라.”

 

과천시로 들어서면서 조성된 시민공원에 가꾸어진 오색 꽃들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시며 하시는 말씀이셨다. 원래 사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성품이기도 하지만 어찌 도회지 풍경이 새롭지 않으시겠는가. 서서울요금소까지 올라가지 앉고 비봉IC로 들어선 후로도 넉넉히 두 시간이 지났을 성 싶은데 길은 자꾸만 복잡해지고 시간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지만 최대한으로 태연자약하게 엄마를 응시해야만 했다. 그 누구보다도 혼자 살아오시면서 예민해진 성품을 소화해내기 버거운 분이라서 시간 많이 남았다고 금방 도착할 것이라고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 발 앞서 나와 기다리는 딸에게서 연신 걸려오는 전화는 성화에 가까웠다. 공연 30분전에 입장하지 못하면 무조건 퇴장이란다. 그 보다도 설레어 떠난 시간이 길어지므로 시장기도 충분한 시간, 강남에 예약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동국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이해랑예술극장까지의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만 공포로 엄습해왔다. 평소 시간으로야 30분이면 가능한 구역이래지만 거리에 출렁이는 인파와 빽빽한 자동차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물론 대중교통 전철을 이용하면 충분한 시간이지만 이틀 후에 노모의 무릎관절 이식수술을 위하여 입원예약을 잡아 놓은 터이니만큼 층계를 이동해야하는 난관에 부득이 공연장주차장까지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다 설상가상으로 식당 내의 전동주차장에 주차된 우리차를 꺼내는데 인력으로는 할 수가 없어 순번을 기다려 컴퓨터 자동장치에 의존을 해야 한단다. 난감한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서울에 대한 거부감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

 

어찌했던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극장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 물론 거금을 투자한 티켇의 비용도 아깝지만 무엇보다 설렘으로 기다려온 노모와 강부자씨와의 상봉이 문제였다. 애초에 아는 길도 아니고 찾아가야하는 고난도의 목적지 앞에 없는 시간도 줄일 겸 비상수단을 쓰기로 했다. 딸아이를 택시로 이동 하게 하여 앞선 택시를 뒤따르기로 작전을 세웠는데 겨우 맞출 수 있을 것 같던 공연시간도 차츰 벗어나고 문제는 8차선 사거리 신호등에서 앞선 택시를 놓치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물러설 수만은 없는 일, 갓길로 빼어낸 차를 정차시켜 놓고 목적지의 방향을 물으니 바로 눈 앞 고개위에 이해랑예술극장 간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감사가 희열로 전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이미 넘어서 버렸고 앞으로 이동하는 데에도 최소한 10분정도가 더 요구되는 거리였다.

 

 

그 때에 앞서간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5분 내로 도착하면 입장이 가능하도록 양해를 얻었다고 속히 오라며 몸만 내린 터라 택시비가 없으니 빨리 돈을 가져다 달랜다. 사인한 곳으로 찾아가 미소로 답해주는 기사님께 넉넉한 금액을 건네고 주차를 서두르는 동안 딸애는 번개같이 할머니를 엎고 100여개의 급경사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뜬 새라면 이해가 전달될는지...

 

우리 삼 모녀는 드디어 고난 끝에 친정엄마와 2박3일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었으며 입장료를 아끼려고 아니 그보다 삼모녀의 간격을 좁혀주려고 집으로 돌아간 딸애의 투혼에 가슴이 뭉클해왔다. 빈 좌석 없이 전매된 극장 안에서 연출되는 친정엄니 강부자씨의 100분간의 투혼에 아리게 박혀오는 친정엄마의 가슴 절이는 사랑!! 관객 모두는 약속한 것처럼 울음바다로 출렁였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극중 출연자들의 단체 인사를 끝으로 공연이 마쳐진 후 엄마는 말씀하셨다 감계무량하심을........

 

“내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이런 손자의 효도를 받다니......”

 

초저녁 필동의 하늘에서 반짝였던 별만큼이나 고운 빛! 엄마의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밤 그 눈빛이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 달래면 욕심일까? 양 무릎관절 이식수술을 장하게 이겨내신

엄마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내며 다음 주부터 동침하게 되면 꼭 말해야겠다. 아직 하지 못한 말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