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겨울/임종본
먼 산의 그림은 한 장의 백지가 되고
추위가 오므려 앉은 처마 밑에선
가느다란 차가움의 숨소리
사방이 어두워지고 나면 밤이 내려오듯
어둠이 한창 창백해질 때
저 멀리서 일어나는 고요아침
그림 속에 귀 기울여
움직임의 소리를 훔치려니
하얀 겨울은 말이 없다.
하루 이틀 채워둔 세상에선
자연의 시 한 수 쉽사리 읊어내건만
머무를 청춘인줄 알고 쌓아온 세월에선
건질 것이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