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임종본
주인의 발걸음에
자라나던 배추밭 끝에 서서
유유히 흘러가던
구름을 삼키며
갑갑하고 잔인했던 유월이
벽화처럼 퇴색되던 날
올올이 벗어던진
젊은 날의 초상은
유수한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집배원이 건네주던 편지의 이야기와
갑작스런 소나기로
새들이 몰려들었다는 얘기와
저녁노을 붉던 날
타오르던 사랑을 전하며
홀홀 다 벗어버린 겨울나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거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