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낙타의 생 - 류시화

개울가재 2012. 6. 25. 17:15

 

 

낙타의 생

       -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