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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굽는 날/임종본

개울가재 2010. 2. 7. 17:58

 

 

 

 

고구마 굽는 날/임종본

 

 

지내온 세월만큼 길었던 고드름

하얗게 녹아내리고

그 샛길로 보드라운 입술 들이밀며

봄 아가씨 오시는 날

 

살아가는 일 감당 못하고

어쭙잖게 거실에 들어 앉아

입춘을 지나버린 고구마 서너 개

씨눈이 불거져 밭으로 간다.

 

직화 냄비 닦아내고

씨눈을 다듬어

굵은 고구마 가로로 눕혀

아랫목 따습기로 한 시간쯤 익혀내니

 

어느 나라의 방향제가

이토록 부드러울까

추억이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한나절 지나간 오후를 삼킨다.